넷플릭스 시리즈 <1992>는 92년도 스페인 세비야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을 계기로 훗날 그 사건에 얽힌 인물들이 테러를 당하면서 우연히 그 테러의 희생양이 된 남편의 복수(?)를 하기 위해 한 여인이 사건을 파헤치는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은 <커먼 웰스>, <광대를 위한 슬픈 발라드>, <더 바> 등을 연출한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 감독의 6부작 시리즈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감독님이지만 한국에서는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잘 없어서 이번에 넷플릭스 시리즈에 있길래 얼른 찾아봤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1992>
장르는 액션, 어드벤쳐, 범죄, 스릴러로 에피소드는 총 6개의 짧은 시리즈 입니다. 한 에피소드 당 대략 40여분의 러닝 타임으로 지루하지 않게 보실 수 있습니다. 잔인하고 고어하게 느껴지실 수 있는 장면과 나체가 나오는 장면도 있어서 청소년 관람불가의 등급이나, 불쾌감이 들 정도로 잔인하고 고어하다기 보다는 살짝, 현실 판타지 동화(?)같은 감성으로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92년 세비아 엑스포,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어떤 폭발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암파로’는 그 사건이 우연히 일어난 폭발 사고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고 현장에 있었던 ‘암파로’는 폭발이 일어나고 남편을 구하러 건물안으로 들어갔지만 이미 남편은 사고로 사망했고 근처에 있던 어떤 사회 거물 인사의 손에서 그을음 하나 없이 깨끗한 92년 세비아 엑스포 마스코트인 ‘쿠로’ 인형을 발견합니다.
이번 폭발 사고가 남편과 함께 있던 거물 인사를 향한 테러로 쿠로 인형이 암시하는 메세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암파로는 폭발 사고가 일어났을 때 자신을 구해준 남편 친구이자 전직 경찰인 ‘리치’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알콜 중독 이슈로 퇴직한 ‘리치’는 ‘암파로’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돕고자 경찰 친구들에게 테러 가능성과 쿠로 인형에 대해서 알려주지만 알콜중독인 ‘리치’의 말을 들어줄 리 없었습니다.
이후로 계속 되는 화재 사고와 그 장소에서 발견되는 쿠로 인형을 계기로 사망자들이 1992년 세비아 엑스포를 개최한 주요 인물들이었단 사실이 밝혀지지만 경찰은 미지의 상부의 압력으로 인해 더이상 조사를 할 수 없습니다.
사건을 은폐하고자 하는 인물은 누구?
경찰 조사에 진전이 없자, 답답함을 느낀 ‘암파로’는 자신이 직접 조사하기로 합니다. 직접 마드리드에서 세비아로 날아가 당시 엑스포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이었던 ‘빅토리아’와 만나게 되면서 1992년에 있었던 세비아 엑스포와 관련된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바로, 엑스포가 개최될 무렵 ‘빅토리아’를 포함한 5명의 개최 주요인사가 어떤 협박을 받고 거액의 합의금을 건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당시에 거액의 돈을 갈취한 협박범이 왜 이제서야 다시 그들을 노리는 걸까요?
그리고 그들 모두는 화염에 휩싸여 사망했습니다.
‘빅토리아’마저 화재 테러를 당하지만 다행이 목숨은 잃지 않을 수 있었는데요. 당시 협박 사건에 연루된 사람 중 남은 사람은 지금은 재무장관이 된 ‘에스테반’ 뿐입니다. 유일하게 남은 ‘에스테반’은 자신을 향하고 있는 테러의 위협에서도 침묵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그리고 ‘빅토리아’가 ‘암파로’와 ‘리치’에게 숨기고 있는 다른 진실은 없는지 회차가 지날수록 궁금증이 증폭됩니다.
마스코트 ‘쿠로’
1992년 세비아 엑스포의 마스코트 ‘쿠로’.
무지개색의 부리와 머리털(?)을 갖고 있는 하얀 새를 모티브로 만든 것 같습니다. 너무 귀여웠어요. 그런 귀여운 마스코트 가면을 쓰고 방화범이 타겟들을 찾아가 화염방사기를 휘두르는 장면이 무척 인상 깊었는데요,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렇게 눈에 띄는 가면을 들고 다닌다면 단번에 용의자로 체포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ㅎㅎ
‘쿠로’의 큰 부리 마스크는 중세 유럽에서 공포의 대상이던 흑사병을 상징하는 흑사병 마스크와 유사해보이기도 합니다. 흑사병 마스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고 재기발랄하게 여러 색을 입힌 느낌이랄까요. 무겁고 어둡지만 명랑한 느낌이 이 드라마와 어울린다고 생각됩니다.
저돌적인 사랑꾼 ‘암파로’
대학생 아들을 둔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암파로’는 남편의 죽음을 밝히고자 ‘경찰이 나서지 않으면 내가 잡는다!’라는 마인드로 지체없이 사건을 파고듭니다. 처음에는 전직 경찰이었던 ‘리치’를 통해 경찰의 힘을 빌려 봤지만 사건 수사가 신통치 않으니까 내남자 죽인 범인은 내가 잡는다며, 본인이 직접 탐정처럼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가며 1992년 세비아 엑스포 사건의 실체를 파헤칩니다.
이전까지는 그녀가 가정주부였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여기 저기 신분을 위장해서 잠입도 하고, 깡패나 사건의 범인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도 없이 그저 저돌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여성입니다. 이 시리즈를 보면 전직 경찰이었던 ‘리치’는 외려 트라우마가 있는 캐릭터로 알콜중독 문제로 사건 해결을 포기했다가, 경찰에 잡혔다가 하면서 여러 고충을 겪는데 반해 ‘암파로’는 그저 불도저처럼 무슨 일이 발생하든지 밀고 앞으로 나갈뿐이어서 그런 캐릭터의 대비도 재미있었습니다.
엑스포 사건의 당시 피해자이자 현재 화재 테러범의 이야기가 시리즈 후반에 나오면서 범인에 대해 동정심이 생기기도 하는데요, ‘암파로’여사는 역시 참지 않습니다. 아무리 동정심이 든다 한들, 내 남편 죽인 범인일 뿐.
남편에 대한 사랑으로 똘똘 뭉친 ‘암파로’와 ‘리치’의 아슬아슬한 썸도 흥미로웠는데요, 로맨스로 이어지나 싶으면서도 안 이어지는 것 같은면서도 애정은 있는 것 같은 둘의 사이.
처음에는 어두운 내용이 어두운 화면과 함께 시청의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중간에 끊을 수 없는 흥미진진함을 선사하는 <1992>입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어둡지만 살짝 현실 판타지 동화(?) 같은 장르라고 생각하시고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현실적인 디테일에 대해서는 흐린눈 하면서 보시면 재미있게 보실 수 있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