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7월 3일 개봉한 영화 <탈주>의 평이 좋아서, 그리고 이제훈, 구교환 배우의 영화가 재미없으면 영화 티켓 비용을 돌려주겠다는 유튜브 영상에서 뱉은 말에 흥미를 느껴 주말에 바로 보고 왔습니다. 역시 배우들이 그런 호언장담을 할 만큼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영화 주인공인 ‘규남’은 아무것도 자신이 결정할 수 없는 북한을 떠나 내가 선택한 길이 비록 실패로 이어지더라도 ‘실패할 자유’가 있는 나라, 남한으로 가고 싶어합니다.
** 스포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탈주>
10년 만기 전역을 앞둔 ‘규남’(이제훈)은 남한으로 탈주를 하기위해 오랫동안 계획을 준비합니다. 그런 규남의 행동을 눈치챈 하급 병사 ‘동혁’(홍사빈)은 규남에게 자신도 데려갈 것을 부탁하지만 규남은 오해라고 일축합니다. 일기예보에 비 소식이 있자, 규남이 만들어 놓은 지뢰 지도를 사용하려면 비가 오기 전에 실행해야 했기에 동혁은 바로 탈영을 시도합니다. 그러다 얼마 못 가서 잡히게 되고 동혁을 회유하기 위해 동혁을 붙잡고 있던 규남도 같이 체포됩니다. 하지만 탈주범를 허용하지 않는 수령님의 방침에 따라 보위부 소좌 ‘현상’(구교환)이 나타나 규남을 탈주범을 붙잡은 영웅으로 둔갑시키고 그를 사단장 외 고위 관료들의 연회자리에 불러 영웅으로서 소개를 합니다. 동시에 사단장 직속보좌 자리에 배치시킵니다. 하지만 남한으로 가고자하는 의지가 강했던 규남은 본격적인 탈출을 시도하고 현상은 그를 막기 위해 추격을 시작합니다.
영화 초반 북한 군대의 내무반(?) 안에서 잠을 자던 이제훈이 눈을 번뜩 뜨더니 창문을 넘어, 건물들을 지나, 비무장지대까지 내달리며 포복자세로 지뢰를 찾아 지도에 표시하고 다시 날이 밝아오기 전에 부대로 복귀하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장면에서 이 영화는 굉장히 스타일리쉬한 영화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단장의 연회 자리에서도 탈영을 하기 위해 빨리 부대로 복귀하고 싶어하는 규남의 초조한 마음을 시계와 규남의 얼굴 클로즈업으로 실감나게 표현한 장면도 흥미진진한 장면 중에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10년 만기 제대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만 합니다. 이 사실 하나 만으로도 규남이 남한으로 도망치고자 하는 마음이 십분 이해되는 느낌입니다. 10년을 군대에서 군인으로 복무하고 사회로 복귀하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여유로운 가정 형편을 가진 사람이라면 10년의 세월을 군대에서 보내고도 부모님이 준비해 놓은 일을 시작해 볼 수 도 있고,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규남처럼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셔거나 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청년이라면 10년 만기 제대를 하고도 희망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규남은 보위부에 잡혀서 남한으로 도망칠 기회도 뺏기게 될까봐 의심을 피하기 위해 현상에게 ‘제대하면 당에서 하라고 하는 일을 하면 될 뿐 제대 후의 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규남의 말대로라면 10년 만기 제대 후에도 당(국가)에서 일자리나 해야할 일을 마련해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그 일이 규남이 원하는 일은 아닐 것이기에 규남은 자신의 앞 날을 자신이 선택 할 수 있는 기회를 위해 꼭 ‘탈주’를 해야겠다고 결심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규남과 현상
도망치는 규남과 그를 뒤쫓는 현상. 그들은 서로 너무 다른 것 같아 보이지만 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운명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현상은 유력한 가문의 자제로 해외에서 유학까지 했었고 보위부 소좌의 자리에 까지 오른 인물로 사람들이 보기에는 성공한 사람이고 누구나 부러워할 인생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현상 또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지 못하고 부모가, 당이 정해준 인생을 억지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상은 군대보다는 연주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 더 좋은 감성적인 사람인 것 같은데, 피아노 연주를 해야 할 섬세한 손으로 피아노 건반 대신 곤봉을 쥐고 사람을 패는 데 사용합니다. 또한 부모가 정해준 사람과 결혼까지 해서 아이가 태어날 예정이지만 러시아에서 만난 사랑하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현상의 집에서 운전 기사를 했던 아버지를 보면서 크던 규남의 꿈은 ‘아문센’ 책을 보면서 운전사에서 모험가로 바뀝니다. 군대에서도 내내 소지하고 있던 그 책은 영화 마지막에 규남을 놓친 현상이 훑어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현상 자신이 어릴 때 규남에게 선물해 준 책이었습니다. 규남의 모험심을 부추기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현상이었습니다.
규남이 남한으로 가고자 하는 이유는 단순히 설명이 됩니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남은 가족도 없고 제대 후 할 수 있는 일도 없기 때문에 최전방에서 보초를 서면서 남한의 라디오를 들으며 월남을 결심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남한과 북한의 복잡한 사정이라던가 다른 거창한 다른 이유를 설명하기 보다는 규남의 남한으로의 탈주 그 자체를 보여줍니다. 중간에 개연성이 부족한 느낌이 있기도 하지만 오락성 영화로서 가볍게 즐기기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중간에 구교환 배우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에서 피아노 연주자들을 많이 연구한 것처럼 보이는데요, 피아노 연주자들이 연주에 몰두할 때의 표정이라던가 입술 모양을 잘 따라한 것 같습니다. 러시아에서 돌아오지 말고 피아노 연주만 하면서 살 수 있었다면 현상도 행복했을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보위부 소좌라는 직책이 높다한들 옷을 얼마나 싸들고 다니는 건지 규남을 잡으려고 추격하는 장면마다 군복이었다가, 연미복이었다가, 가죽 점퍼를 입었다가 다시 군복을 입고 있는 장면들이 구교환에게 잘 어울리고 멋있었지만 개연성이 좀 떨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규남의 기준으로 보면은 지뢰 지도를 이용하기 위해서 비가 오기 전날에 실행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만에 남한으로 도망쳐야 하는 상황인데, 규남을 뒤쫓는 현상은 규남을 따라가면서 의상이 자꾸 바뀌니까 며칠 동안 이어진 추격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영화적인 멋짐을 만들기 위해서 그런거겠지요?
영화 초중반까지는 거의 규남의 원맨쑈 같았는데 후반에 가면서 규남과 현상의 일대일 추격전이 이어집니다. 잡힐듯이 아슬아슬한 규남과 왜인지 잡지 않는 현상..이런 느낌입니다. 이 때문에 저는 영화를 보면서 혹시 규남이 현상의 첫사랑이 아닐까? 어릴 적에 서로가 풋 첫사랑 이런 거였던 걸까? 그래서 규남을 단번에 잡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2차 창작같은 생각을 해보기도 했었습니다. ㅎ
영화 마지막에 규남이 남한에서 정착해서 살면서 청년창업 대출(?) 지원 합격 문자를 받고 좋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정부에서 지원하는 이런 정책에 뽑히기 쉽지가 않은데 규남은 아마 탈북자 전형으로 뽑혔나 보다라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없이 가볍게 보기 좋은 영화이므로 습하고 더운 여름 영화관에서 즐기시면 좋은 영화로 생각됩니다.
습하고 엄청난 폭염으로 힘들지만 재밌는 영화 한 편 보면서 마음의 휴식도 챙기시고 건강 조심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