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먼 웰스] 30억 복권 당첨금은 누구에게로?

<커먼 웰스>는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 감독의 작품으로 스페인 블랙 코미디 영화입니다. 개인적으로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 감독님의 작품을 좋아해서 많이 찾아 보다가, 스페인 영화의 매력에 빠진 것 같습니다. 외국인인 제가 보기에 스페인 영화의 주인공들은 말도 엄청 빨라서 템포가 빠른 느낌인데 처음에는 너무 정신없고 집중이 안됐었는데 이제는 빠른 말투로 다다다 하고 쏟아내듯 말하는 스페인어가 노래같이 느껴지기도 한답니다.

<커먼 웰스>는 좀 오랜된 2002년 개봉작으로,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이미 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아하는 감독님 작품인데 좀 예전 작품이라 왓챠 보관함에 담아만 놓고 있다가 오랜만에 생각이 나서 봤는데 역시 너무 재미있게 봤어요. 화질이 좀 진입장벽이긴 하지만 블랙 코미디 장르와 스페인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추천해드리고 싶어서 글을 작성해 봅니다. (결말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커먼 웰스>

<커먼 웰스>는 부동산 중개인인 줄리아가 마드리드의 한 아파트를 고객에게 소개해 주면서 시작됩니다. 고객은 아파트 계약을 하지 않고 떠났지만 고급 가구와 집기가 그대로 보존된 집을 보고 줄리아는 하룻밤 머물기로 결정합니다. 다음 날 다른 고객에게 다시 집을 소개하던 중에 안방 천장에서 물이 새어 소방서에 신고를 하게 되는데.. 윗층 세입자인 노인이 사망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알고 보니 그는 스포츠 복권이 당첨되어 거액의 현금을 집에 가지고 있었는데, 현금 수송차가 집으로 당첨금을 옮겨주는 걸 본 후 아파트 주민들은 모두 그 돈을 노리고 있었던 겁니다. 줄리아가 티비 광고에서 힌트를 얻어 노인이 숨겨둔 현금 30억원을 찾아내지만 아파트 주민들은 그녀를 순순히 밖으로 나가게 해주지 않습니다. 아파트 안에서 펼쳐지는 줄리아와 아파트 주민들의 쫒고 쫒기는 레이스가 펼쳐지는데요, 과연 30억원은 누구에게로 돌아갈까요?!

 

여러가지 감상

돈에 대한 광기, 집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아닐까 합니다. 옛날 영화이기는 하지만 그 메세지는 지금 시대에도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영화 초반에 줄리아가 고객에게 판매해야 할 집에서 남편을 불러 로맨틱한 밤을 보내려고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남편은 힘든 하루를 보내고 와서 피곤해하며 같이 소파에 누워서 티비만 보는 장면인데요, 티비에서 나오는 내용이 대머리수리(독수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대머리수리는 시체를 먹고 사는데 한 마리가 시체를 먹고 있으면 어디선가 여러 대머리수리들이 나타나고 나중에는 자칼까지 나타나 시체가 한 점도 남지 않고 사라진다는 내용입니다. 남편과 시간을 보내는 장면으로 스쳐지나가듯이 나왔지만 이 장면이야말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중요한 복선이었습니다.

윗층에 사는 복권 당첨자는 어마어마한 현금을 손에 넣었지만 그 돈을 노리고 있는 아파트 주민들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집 안에서만 생활을 하다가 죽게 됩니다. 우연히 줄리아가 아파트에 방문하고 그 돈을 발견하게 되지만 윗층 노인처럼 아파트 밖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녀의 주위를 멤도는 사람들을 줄리아는 그저 괴팍한 이웃인줄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의 공동체 조직으로써 각자 임무를 나눠 노인을 감시했듯이 줄리아를 감시하는 것이었어요. 매력적인 이웃이 줄리아를 유혹하기도 하고, 화장실 창문으로 그녀를 훔쳐보는 지 감시하는 지 모르겠는 다스베이더 코스튬을 하고 있는 청년도 있습니다.

30억이라는 거금이 생긴 줄리아는 어떻게든 아파트 밖으로 나가려고 하고, 그녀를 막기 힘들어진 주민들은 본색을 드러내 대놓고 그 돈을 훔치려 합니다. 돈에 대한 집착으로 폭력도 서슴지 않게 저지르다 사람까지 죽게되는데도 주민들은 그 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줄리아도 처음에는 갑자기 생긴 큰 돈에 손이 덜덜 떨리던 사람이었는데 돈에 대한 집착인지 광기인지 나중에는 자기가 사람을 죽였는데도 아무렇지 않아 합니다. 돈만 무사하다면요.. 하지만 결국에 줄리아는 주민들의 광기에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며 돈이 든 가방을 놓아 버립니다. 그리고 그 가방을 노리던 주민 한 명이 가방을 낚아채다 건물 밑으로 추락해 죽게 되는데, 여러 주민들이 가방을 빼앗기 위해 죽은 사람을 향해 달려드는 장면이 영화 초반에 티비에서 나온 대머리수리들이 시체에 달려드는 장면과 겹쳐보였습니다. 

‘로또 당첨이 된다면..’하고 매 주 로또를 사는 저로서는, 줄리아가 30억을 손에 넣은 후에 ‘벤츠를 사야지’, ‘여행을 가야지’하고 생각하는 모습이 제 자신과 같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얼마나 행복할까? 하면서요. 하지만 그랬던 줄리아가 나중에는 사람이 죽어도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한 대 입에 물고는 자기한테 오는 전화를 태연히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하더군요. 돈에 미치게 되면 도덕이고 뭐고 아무것도 안보이게 되는 걸까요.

애초에 그 돈은 윗층 노인의 돈이었는데, 주민들은 자기들이 그 돈의 지분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점이 다수 대 소수의 대결같아 보였습니다. 아무 권리도 없는 사람들이 뭉쳐서 다수를 이루니까 원래의 돈 주인도 그들이 무서워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집 안에서만 생활하다가 사망하게 되었는데, 그런 상황을 만든 것 자체가 폭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주민들은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노인을 감시하고 있었다며 자신들이 큰 희생을 치른 것처럼 말합니다. 누가 남의 돈 훔치라고 했나?

줄리아가 처음부터 문으로 나갈 수 없다면 창문으로 빨리 도주했으면 좋았을텐데. 감독님이 애초에 줄리아가 창문으로 도망가지 못하는 장치로 만든 장면인지 모르겠으나, 창문을 비출 때마다 비가 엄청 많이 오는 모습이 보이더라구요. 저라면 우선 비닐에다 돈을 싸서 비를 맞더라도 도망갔을텐데 말입니다. 무엇보다 줄리아가 거주하는 것처럼 나오는 그 집은 줄리아 집도 아니기 때문에 중간에 집 보러 사람들이 계속 들르거든요. 그럴때마다 줄리아가 기지를 발휘해서 사람들을 돌려보내는 장면도 재밌었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돈에 미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재미있게 잘 표현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 감독님은 이런 한정된 공간에서 나타나는 인간 본성을 잘 표현하는 감독님인 것 같아요. 감독님의 <더 바>, <퍼펙트 스트레인저스> 같은 작품도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인데 지루하지 않게 몰입해서 보기 좋았습니다. 스페인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는 문화적인 차이 때문인지 상황에 대해 이해하기도 힘들고 말도 빨라서 적응이 어려웠는데 지금은 빠른 말투도 매력적으로 들리고 특유의 분위기를 즐기게 된것 같아요.

<커먼 웰스>는 네이버 시리즈 온과 왓챠에서 보실 수 있으니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보시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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