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개봉한 <악마와의 토크쇼>는 2023년 부천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프리미어 상영이 되기도 한 공포 영화입니다.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오지 않는 공포영화라고 해서 쫄보인 저도 상영전부터 꼭 봐야겠다고 생각한 영화였습니다. 우리집 안방에서 티비 토크쇼에 나오는 악마를 볼 수 있다니, 이보다 더 흥미로울 수 없으니까요.
상영전부터 예고편을 열심히 찾아봤었습니다. <악마와의 토크쇼>라니, 토크쇼에 악마가 출연한다는 것만으로도 도파민 파티인데, 영능력자와 영능력자는 사기꾼이라고 하는 사람의 대결까지. 악마가 영능력자의 몸에 빙의가 되서 영능력자가 사기꾼이라고 하는 사람을 해치는 스토리일까 아니면 영능력자의 트릭을 파헤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사실 그 사람이 악마인 건 아닐까,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펴보기도 했습니다. 상상한 것 중 어느 것도 영화 내용을 맞추지는 못했습니다.
아래부터는 스포의 내용이 있습니다.
악마와의 토크쇼
간단한 줄거리를 말하자면 1부와 2부로 나눠 진행되는 스토리로, 70년대 미국에서 인기는 많지만 1위는 될 수 없었던 만년 2등 토크쇼 ‘올빼미쇼’의 진행자 잭 델로이는 핼로윈 특집방송을 준비합니다. 1부에서는 고인의 영혼을 느낄 수 있는 영매인 크리스투가 나와서 방안의 영혼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바로 다음 영능력자 사냥꾼인 카마이클이 나타나서 크리스투가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속일 수 있는지 알려줍니다. 하지만 크리스투가 갑작스레 검은 액체를 쏟으면서 실려나가고 카마이클만 남은 상황에서 사탄교회에서 구출된 릴리와 그녀의 보호자 준박사가 출연하며 2부가 시작됩니다. 인간 제물을 바치는 사탄교회에서 구출된 릴리는 어린 소녀로 준 박사가 그녀를 치료하던 중 릴리가 악마에게 빙의되는 모습을 보고 책을 쓰게 되고 토크쇼에도 나오게 된겁니다.
토크쇼 재계약을 앞둔 잭은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악마 소환이라는 특종을 노리고 릴리와 준 박사에게 빙의 할 것을 요청합니다.(물론 프로 방송인답게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고 릴리가 자진하도록 방청객 반응을 유도합니다.) 결국 준 박사의 최면술로 악마를 소환한 릴리, 그 장면을 본 방청객들은 놀람을 금치 못하는데 카마이클이 또 나서며 이것 또한 사기라며 자신이 그 트릭을 깨부수겠다고 하고 토크쇼 조수(?)인 거스와 방청객, 시청자를 대상으로 최면을 실시합니다.
카마이클의 최면으로 인해 모두(방청객, 출연자, 아마 시청자도?) 거스의 몸에서 벌래 덩어리를 보게 되는데 최면을 종료하고 릴리의 악마 소환은 이런 최면으로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합니다. 믿기지 않는 단체 최면을 증명하기 위해 녹화된 영상을 보는데 교차증명을 위해서 릴리의 영상도 보자고 합니다. 릴리의 영상을 보던 중, 잭은 이상한 형체를 발견하고 갑자기 릴리의 몸에 악마가 빙의되어 출연자들을 모두 죽이고 잭은 환영을 보게 됩니다. 환영 중에 투병중인 매들린이 나타나 자신의 고통을 없애달라고 부탁하고 잭은 칼을 들어 그녀에게 찌르는데, 정신을 차리니 매들린이 아니라 릴리였고 잭이 그녀를 죽인거였습니다.
<악마와의 토크쇼>는 페이크 다큐형식의 영화로 70년대 당시의 느낌을 살려서 영화 장면이 녹화 테잎을 재생하는 것처럼 상영됩니다. 화면이 지지직 거리는 브라운관 송출 느낌인데, 저는 어릴때 보던 티비같아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브라운관 티비를 접한적 없는 젊은, 어린 관객들한테는 영화 장면들이 어떻게 느껴졌을까 궁금합니다.
결국 악마가 토크쇼 진행자 앞에서 문답을 나누는, 제가 상상한 그런 방식은 아니었구요. 누군가가 소환한 악마가 티비 방송 중에 빙의로 나타나고,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 물리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사람을 죽였으니 나중에 녹화 테잎을 보면 실제로 악마가 실존한다는 증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이런 infp적 사고, 부끄럽습니다.)
진행자 잭 델로이
심야 토크쇼 ‘올빼미 쇼’의 진행자인 잭은 인기는 많지만 1등은 되지 못한 비운의 진행자입니다. 이런 사람일수록 누구보다 더 1등이 되고 싶겠죠. 잭은 배우 출신의 아름다운 아내 매들린의 내조로 인기를 더했지만 비흡연자인 그녀가 폐암으로 사망하자 여론의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폐암으로 말도 잘 못하는 아내를 쇼에 출연시키기까지 해서 자체 최고 시청율을 기록했지만 역시 1등은 하지 못했습니다.
잭에 관한 루머로는 일부 유명인과 권력자의 비밀 조직인 ‘글로브’에 가입되어 있으며 이 조직은 이상한 종교의식도 한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영화 결말을 생각해보면 릴리가 소속되어 있던 사탄교회의 의식으로 인한건지 잭이 소속되어 있다고 알려진 비밀조직의 의식으로 인한 결과인지 보는 사람의 해석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을것 같습니다.
과연 악마는 릴리를 통해서 소환되어 온 것일까요, 아니면 잭이 속한 비밀조직에서 행한 종교 의식으로 인해 아내를 희생양으로 삼고 유명세를 얻기 위해 소환된 것일까요? 악마의 통로는 릴리였지만 영화의 흐름상 모든 결정은 잭에게 있었고, 악마 소환이라는 이벤트로 시청율 1위를 하기 위해서 준 박사를 꼬셔서 릴리를 데려오게 하고, 카마이클이 그녀가 사기꾼이라고 믿지 말라고 할 때마다 카마이클의 입을 다물게 했으며, 독실한 신자인 거스가 ‘당신은 좋은 사람이다. 지금이라도 멈춰야한다’고 조언했을 때도 묵살했습니다. 잭은 악마가 사람들을 해치는 결과를 원한 것은 아닐테지만 자신의 일련의 선택으로 그 결과가 만들어졌고, 아마 이후에 잭은 누구보다 유명해졌을테니 소원을 이룬 셈입니다.
악마
결국 영화에서 악마의 얼굴은 볼 수 없었습니다. <악마와의 토크쇼>라고 하기에 악마가 나타나서 의자에 앉아 그동안 인간사에 있었던 악마에 대한 오해에 대해서 해명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했었는데, 영화는 그런 내용도 아닐 뿐더러 악마에 대한 형상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어쩌면 악마보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아내뿐 아니라 주변인의 희생도 감수(?)하는 잭이 더 악마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포스터에 잭의 얼굴이 악마의 상징같은 불길로 표현됐나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에서 가장 숨이 막혔던 장면은 사회인으로서 경험으로 비추어 보건데, 거스가 이상한 악마소환 같은 일을 벌이려는 미친 진행자와 프로듀서를 말리는 장면이었습니다. 뭔가 심상치 않는 기운을 느낀 거스가 불안해 하며 지금이라도 당장 그만두라고 하자 프로듀서가 ‘너는 웃고 있기나 해!’(대략 이런 느낌의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자 (아마 직장을 잃을 수 없었던) 거스가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얼굴을 하고 자리로 돌아가는 장면입니다. 거스는 무사하길 바랬었는데..
릴리와 준 박사
릴리는 악마에게 인간 제물을 바치는 사탄교회에서 겨우 살아남았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토크쇼에 출연했다가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악마의 영향을 나타내려고 한 영화적 장치인지, 티비에 자신이 출연하는게 그저 신기한 소녀 캐릭터의 해석인지.. 릴리는 무대에 오르자 마자 잭의 인사에도 잭을 보지 않고 카메라를 쳐다보며 대답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잭이 굳이 카메라를 보지 않아도 된다고 하자 알았다고 하면서도 계속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봅니다. 어쩌면 릴리 조차도 티비에 나와 얼굴을 알리고 싶다는 자기 욕망으로 인해 결국 악마에게 희생된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 욕망으로 인해서 안좋은 결말을 맞은 사람에는 준 박사도 포함입니다. 처음에는 릴리의 정신적 케어를 위한 정신과 의사인 줄 알았는데, 릴리에게 어떤 능력을 보고 최면을 걸어 악마를 소환하질 않나, 그 이야기를 토대로 책도 출판하고 유명하고 잘생긴 진행자에게 넘어가 어린 릴리를 앞세워 티비에 출현하질 않나. 준 박사가 토크쇼에 오긴 했지만 무대에 올라가기 전에 잭에게 릴리의 출연은 무리인것 같다고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잭의 요청에 거절 못하고 무대에 오르게 됩니다. 자신이 릴리를 통해서 악마 소환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이 엄청난 결과를 불러올지도 모르고요.
‘올빼미쇼’의 프로듀서
프로듀서는 잭과 함께 ‘올빼미쇼’의 흥행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실제로도 다른 제작진 모르게 잭과 둘이서 악마 소환 이벤트를 계획했구요. 출연자인 크리스투가 구급차 안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에도 쇼에 광고가 안 붙겠다고 걱정하거나, 릴리의 악마 소환하는 장면이 티비를 통해 송출된 후 방통위 같은 곳에 소집 명령이 떨어졌다고 하면서도 광고주들이 줄을 잇겠다고 좋아합니다. 악마는 오늘도 인간에게 타이틀을 뺐겼습니다.
<악마와의 토크쇼>는 티비 촬영 스튜디오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지만 단조로운 느낌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영화 중간에 티비 조정시간도 있어서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70년대 시청자로 티비를 시청하는 것처럼 느끼게 해줍니다. 카마이클의 단체 최면 씬에서 신체 훼손 장면이 있으나 그 씬을 제외하고는 너무 잔인한 장면은 없습니다. 그래서 공포영화를 좋아하지만 너무 무서운 장면은 못보는 저로서는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포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