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2번 이상은 봐야할 것 같은 영화

영화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알랭 레네 감독의 작품으로 무려 90세의 나이에 연출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역시 거장에게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대게 영화를 보고 나면, ‘아, 이 영화는 이런걸 말하고 싶었구나’하는 감상이 생기는데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제목도 어떻게 해야할 지 계속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결론은 여러 번 봐야하는 영화인 것은 분명하기에 위와 같이 결정했습니다.

분명 영화가 끝나고 느끼는 감동이 있는데 어떤 느낌인지 딱잘라 표현하기가 어렵지만 많은 분들이 보시면 좋을 것 같은 영화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제 막 영화를 본 저로써는 물음표가 많이 생기는데 아마 2번 이상 본다면 볼 때마다 다른 감상이 생길 것 같아서 기대도 많이 됩니다. 2012년 작품인데 당시 상영하는 영화관에서 봤으면 참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ott로 영화를 보면 편하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영화관에서 집중하면서 볼때 느낄 수 있는 감동은 또 다르니까요.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영화는 앙트완의 부고 소식을 알리면서 시작됩니다. 앙트완이 사망하기 전까지 살았던 그의 저택에서 그의 유언장 낭독과 장례식을 치르는데 참석해달라고 그의 예전 작품에 출연했던 배우들에게 요청합니다. 저택에 모인 사람들은 인사를 나누며 그의 유언 영상에서 부탁한 신생 극단의 연극 <에우리디스>를 다같이 감상하게 됩니다.

장례식에 초청된 사람들은 앙트완의 연극 ‘에우리디스’에 출연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1대 에우리디스와 오르페우스, 2대 에우리디스와 오르페우스, 그리고 그들의 엄마, 아빠, 그 외 배역들도 있고요. 영상 속의 연극 ‘에우리디스’를 보던 배우들은 점차 자신의 배역의 대사를 따라하기 시작하고 연극 ‘에우리디스’는 영상 속, 1대, 2대 에우리디스의 세 가지 버전의 연극을 보여주듯이 진행됩니다.

그렇다보니 같은 상황의 연극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연기하는 배우에 따라 그 느낌이 아주 다릅니다. 1대의 사빈느 아제마가 연기하는 에우리디스는 밝고 순수하며 상처 받기 쉬운 에우리디스를 느낄 수 있고, 2대의 안 커시그니가 연기하는 에우리디스는 내면의 불안함이 가득한 느낌이고 영상 속의 에우리디스는 불안정한 10대 청소년 느낌이었습니다. 오르페우스 또한 1대는 단호한듯 하면서도 주저주저하는 10대 청년의 느낌이 강했고 2대는 반항아 느낌의 오르페우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같은 대사를 같은 배역의 세 배우들이 각자 한번 씩 연기하는데 도돌이같이 같은 말을 하는 장면인데도 느낌이 다 달라서 인상적이었어요. 영상 속에서 진행되는 연극과 그 영상을 시청하고 있는 배우들이 서로 티키타카 하듯이 대사를 주고 받는 장면들도 재미있었습니다. 

연극 ‘에우리디스’를 연기하는 영상속 배우들과, 그 영상을 보는 배우들과, 그들이 연기하는 영화를 보고 있는 나. 영화를 보는 관객까지 포함해서 액자식 구성이 설정된 것 같았습니다. 영화 설정상 같은 내용의 반복이다 보니 지루할 수도 있는데 영화는 각 커플의 배우들이 연기할 때 배경을 다 다르게 만들어서 색다른 느낌을 유지할 수 있게 합니다. 극 중의 카페 세팅과 호텔 인테리어가 각각 다 달라요.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

이 영화는 주인공의 이름을 봐도 아시겠지만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를 각색한 영화입니다. 알랭 레네 감독님이 스무살 무렵 장 아누이의 연극 ‘에우리우스’를 보고 사랑에 빠져 70년동안 구상해서 만든 영화라고 합니다. 영화를 보면서도 하루아침에 이렇게 각색해서 만들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나 거장의 오랜 숙고 끝에 태어난 영화인것 같습니다.

사실 그리스 신화에 조금 무지한 저는 오르페우스의 이름은 알지만 어떤 존재인지는 몰랐었는데요. 오르페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폴론의 아들로 악기를 잘 연주하는 음악가라고 합니다. 어느 날, 부인인 에우리디스가 뱀에게 물려 죽게 되고, 그녀를 너무 사랑한 오르페우스는 도움을 받아 저승으로 가서 그녀를 지상으로 데려올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저승의 신 하데스가 내건 조건은 지상으로 올라갈 때까지 뒤를 돌아보면 안된다는 거였습니다. 지상에 거의 올라온 오르페우스는 뒤에 오고 있는 에우리디스 또한 지상으로 올라온 줄 알고 뒤를 돌아봤다가 아직 올라오지 못했던 에우리디스는 저승으로 떨어진다는 내용입니다.

< 스포의 내용이 있습니다. >

 

영화 속에서 연극 ‘에우리디스’의 상영이 끝나고 배우들끼리 서로의 감상을 토론하고 있을때 앙트완이 등장합니다. 살아서요. 그는 자신의 연극이 아직도 사람들에게 통할 수 있을 지 알아보고 싶어서 깜짝 카메라를 해봤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다시 만난 그를 반가워 하며 포용하는 장면 뒤로 연극 ’에우리디스‘의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스를 찾으러 저승으로 가기위해 숲 속을 거닐다 강에 빠지는 장면이 나오며 ‘연출가 앙투완 갑작스런 사망’이라는 신문 표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극장에서 연극 ‘에우리디스’가 시작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뒤의 내용은 영화를 보면서 상상도 못한 반전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앙트완이 죽으면서 끝나는데 머릿속에 물음표만 가득한데 갑자기 끝나버려서 좀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숲 속에서 강에 빠져 죽는 사람이 오르페우스가 아니라 앙트완이었나? 싶어 몇 번을 다시 봤으나 오르페우스인지 앙트완인지 알 수 없게 실루엣만 나옵니다. 오르페우스라고 볼 수 도, 앙트완이라고 볼 수도 있겠고 오르페우스이자 앙트완일 수도 있겠습니다.

영화 속 연극 ‘에우리디스’가 끝나고 앙트완이 살아있다는 걸 알게된 순간 영화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다음 장면에 앙트완이 사망하는 내용이 나오면서 다시 영화속으로 끌려들어가는 느낌입니다. 아직 영화는 끝나지 않았어! 하듯이요.  앙트완인지 오르페우스인지 확신할 수 없는 인물이 강에 빠지면서 앙트완이 죽음으로 자신의 오르페우스 스토리를 완성한 것 같기도 했습니다. 아닐수도 있구요. 글의 처음에서 말한 것처럼 저에게는 어떤 감상인지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영화입니다. 하지만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온 영화인것은 분명합니다.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제목의 의미는?

도대체 제목은 무슨 뜻일까? 영화랑 제목을 아무리 매치해 볼려고 해도 알 수 가 없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다른 블로거님들이 쓰신 리뷰랑 뉴스들도 찾아봤는데 예상하신 이유가 다 다르시더라구요. 어떤 분은 영화에서 배우에 따라 에우리디스와 오르페우스의 느낌이 달라지면서 다른 연극을 보는 것 같은 느낌처럼 영화를 보고 난 후 감상은 관객마다 다 다른 것이라서 이런 제목일 것이다 하고, 어떤 기사에서는 아마도 감독이 영화 편집을 할 때 제작자에게 아직 편집이 끝나지 않았으니 당신은 아직 영화를 본 게 아니다 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는 에피소드를 전하면서 그런 의미이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글을 쓰면서 생각을 해봤는데, 오르페우스가 저승에서 에우리디스를 데리고 올라오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아직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보기 전입니다. 제목은 그 순간을 말하는 게 아닐까하는.. 영화에서는 오르페우스 신화에서 그들의 ‘사랑’에 초점을 맞춰 내용이 진행되는데요, 오르페우스가 뒤돌아 봄으로써 에우리디스를 되찾을 기회를 잃고 고통받다가 그녀를 다시 되찾기 위해 본인이 사망하면서 겨우 저승에서 그들의 사랑이 완성된다는 해피엔딩(?)입니다. 만약 오르페우스가 처음부터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면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혹시 지금 뒤를 돌아볼 순간에 놓인 사람이 있다면 아직 뒤돌아 보지 않았으니 기회가 있다는 얘기처럼도 느껴졌습니다.

아마 영화를 보시고 나면 각자 다른 감상을 느끼실 것 같은데요, 이렇게 이런 저런 해석을 하기 위해서 머리를 쓰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영화는 오랜만에 본 것 같아 너무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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