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슬픔의 거울> by 피에르 르메트르. ‘피에르 르메트르’ 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우연히 본 인스타 피드였는데요. 책 소개를 하시는 계정주님이 좋아하는 작가라고 소개 하시면서 <대단한 세상>이라는 책을 추천하셨어요. 항상 추리소설 위주로만 책을 읽는 저는 이번 기회에 다른 장르의 책도 읽어보자고 결심하고 도서관에 들러 그의 책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추천하신 <대단한 세상>은 대여중이어서 프렌치 시크 여인이 표지 그림인 책을 가져왔습니다. 그 책이 <우리 슬픔의 거울> 인데요, 집에 와서 보니 이 책은 피에르 르메트르의 ‘참화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었어요. 앞의 소설을 읽지 않고 읽어도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까 걱정했었는데, 다행하게도 세계 대전이라는 참상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3부작이라서 한 명의 주인공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따로 읽는 데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우리 슬픔의 거울
<우리 슬픔의 거울>의 주인공은 루이스, 가브리엘, 라울, 데지레 등 여러 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 중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메인 캐릭터는 루이스입니다.
교사인 루이스의 아버지는 전쟁 중에 돌아가시고 어머니 마저 사망하자 외동딸인 루이스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오래된 주택에서 혼자 살고 있었어요. 어머니때부터 알고 지내던 레스토랑 ‘라 프티트 보엠’의 사장 쥘 아저씨를 도와 주말에는 서빙 알바를 했었는데 어느 날, 오랜 단골인 백발의 노신사로 부터 제안을 받게 됩니다. 루이스의 알몸을 보고 싶다는 단골의 제안에 화가 나기도 했었지만 결국은 어느 호텔에서 그를 만나 알몸이 됩니다. 그 순간, 노인은 가져온 권총을 자신의 머리에 대고 발사하고 놀란 루이스를 그의 피를 뒤집어 쓰고 호텔 밖으로 뛰쳐 나갑니다. 결국 경찰이 출동해 노인의 사인이 자살로 밝혀진 이후에 루이스는 풀려나게 됩니다.
알고 보니 노인은 인근 동네에서 유명한 의사였고, 그의 부인에게 죄책감이 들어 사과를 하러 갔다가 생각지도 못한 어머니의 비밀을 알게됩니다. 그건 바로, 자신의 어머니와 의사가 불륜 사이였다는 말이었는데, 너무 놀란 루이스는 그 일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어머니를 알고 있던, 그 사건에 연루된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이야기를 듣고 자신에게는 어머니와 불륜남 사이의 이부 형제(오빠)가 있고 그는 지금 어느 부대에서 복무 중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됩니다. 전쟁이 언제 시작 될 지 모르는 시기에 이부 오빠를 찾으러 군부대에 가겠다고 우기는 그녀를 걱정한 쥘아저씨가 루이스와 동행합니다.
어느 부대에서 근무하는 군인들인 가브리엘과 라울은 작전 중에 진격중인 독일군을 피하던 중 의도치 않게 탈영을 하게되고 다시 잡히게 됩니다. 탈영병의 신세로 어느 곳으로 보내지고 그 곳을 탈출할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외과 의사이자 교사, 또는 헬기 조종사 이기도 했던 데지레가 이번에는 군 장군의 대변인으로 입사(?)를 했습니다. 그는 성공적인 전쟁 승리를 위해서는 라디오 선전을 해야 된다고 주장하고 이는 크게 성공합니다. 말 솜씨가 좋았던 그는 상사의 신임을 얻을 뿐 아니라 기자들 앞에서 연설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너무 뛰어나면 시샘하는 이들도 생기는 법, 그를 시기하는 사람이 그의 경력을 조사하다가 의심스러운 점들을 발견하고 이번에도 의심받기 전에 홀연히 자취를 감춥니다.
과연 가브리엘, 라울, 데지레 중 누가 루이스의 이부 오빠일까요? 추리 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누가 오빠일까 상상하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개인적 사담
이 소설은 세계 대전이라는 전쟁의 참담한 상황 속에서 일상을 보내는 이들이 주인공인 소설인데, 전혀 어둡거나 슬프지 않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가브리엘, 라울, 데지레 중에서 누가 루이스의 이부 오빠일까 추리도 해가면서요. 읽다보면 가브리엘 같기도 하고, 데지레 같기도 하고, 하지만 라울은 아니기를 바라면서.. 하하..
주인공이 여러 명 이지만 술술 읽히기 때문에 몰입해서 읽기 쉽고, 유쾌한 스토리라서 혹시 무슨 책을 읽어 볼까 하고 고민하고 계시다면 강추하는 소설입니다. 저는 진짜 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하지만, 딸 뻘의 여자와 불륜에 빠진 것도 모자라 그녀와 닮았다는 이유로 그녀 딸의 알몸을 죽기 전에 보려고 하는 부분이라거나, 헌병꾼으로 나오는 페르낭 상사의 아내의 가슴 사이즈와 모양을 쓸데 없이 강조하는 부분 등이 읽으면서 으잉? 스러운 부분이었는데요. 루이스 엄마의 아는 오빠였던 쥘 아저씨도 딸 뻘인 루이스에게 흠모하는 감정을 품는 내용도 있어서.. 그냥 프랑스 감성인가 보다 생각하고 넘겼습니다.
사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라울이라는 주인공이 제일 불쌍하게 느껴졌는데요, 처음에 가브리엘과 같이 이야기가 진행될 때는 그냥 쌩 양아치 깡패라고 생각했었는데(생 양아치 깡패인 점은 팩트입니다만,) 후반부로 갈 수록 어른들의 사정에 희생된 불쌍한 인물이었습니다.
소설의 중요한 축이라고 생각되는 데지레의 이야기는 그냥 따로 존재하는 한 편의 소설 같았어요.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인물로 말솜씨 좋고 머리도 비상하며, 이상하리만치 운도 좋은 그런 데지레의 이야기가 계속 읽고 싶어졌습니다.
<우리 슬픔의 거울>을 너무 재밌게 읽어서 나중에 피에르 르메트르의 다른 소설 <오르부아르>를 도전해 봤는데요. 이 책은 루이스의 어린 시절 그의 주택에 임대를 온 퇴역 군인들의 이야기 인데요, 빌런 격인 주인공 도네프라델이 나오는 부분들은 고구마 100개 먹은 느낌이라 읽기 힘들었습니다. 전쟁 중에 포탄을 맞아 얼굴의 반이 없어진 주인공이나 그런 동료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어떻게든 돈을 벌고 모르핀을 훔치는 주인공의 이야기와 비열한 수를 사용해서 승승장구하는 악인의 이야기가 대조되는 진행 방식이 저한테는 너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다행이 악인은 결국 파멸하게 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