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숨겨진 얼굴] 교육의 신 이라는 쓰보이의 본 얼굴은?

<신의 숨겨진 얼굴>의 작가 후지사키 쇼는 개그 콤비 출신으로 ‘좋아하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싶어서’ 소설 집필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여러 공모전에 응모한 끝에 2014년 제 34회 요코미조 세이지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하며 소설가로 데뷔를 했습니다. 그 때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 이 <신의 숨겨진 얼굴>이라는 작품입니다.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이렇게 흥미롭고 탄탄한 전개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니 너무 놀라웠습니다. 아마 미스테리 소설의 애호가가 아닌가 하고 추측해봅니다.

개그 콤비를 하면서 꽁트 각본을 만들었던 경험이 반영된 것인지 소설은 연극이나 영화의 대본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5장으로 나뉘어진 이 소설은, 장소는 교육의 신이라고 불렸던 뛰어나고 헌신적인 교육자 쓰보이의 장례식으로 장례 절차를 각 5장으로 나누어 등장 인물들이 각자의 기억을 회상하며 진행됩니다. 각자의 회상으로 시작해서 장례 절차가 진행됨에 따라 서로의 기억을 맞춰나가다가 하나의 연결된 이야기로 귀결됩니다. 등장인물이 각자의 고인에 대한 에피소드를 생각할 때, 독자는 다른 등장인물의 이야기에서 나왔던 단서를 가지고 쓰보이라는 인물이 사실은 악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선하고 헌신적이었던 교육의 신 이라는 쓰보이의 본 얼굴은 무엇일까요?

 

신의 숨겨진 얼굴

< 등장 인물 >

  • 쓰보이 세이조 : 전직 교사, 사심 없이 이상적인 교육을 추구한 신 같은 남자 (고인)
  • 쓰보이 하루미 : 세이조의 딸, 아버지를 따라 교육자가 됨
  • 쓰보이 도모미 : 하루미의 여동생, 인기 없는 무명 배우.
  • 사이키 나오미쓰 : 사이조의 제자, 하루미의 고교 동급생.
  • 네기시 요시노리 : 세이조의 동료교사였던 호랑이 체육교사.
  • 고무라 히로코 : 쓰보이 옆집에 사는 나이 든 주부.
  • 아유카와 마키 : 세이조의 제자이며 쓰보이네 부지에 자리한 연립주택 세입자.
  • 데라시마 유 : 쓰보이네 부지의 연립주택 세입자. 인기 없는 개그맨.

이렇게 등장 인물은 총 8명으로 각 장마다 고인을 제외한 7명의 회상과 대화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장례 절차가 진행되어 마무리가 될수록 이야기는 클라이 막스에 이르게 되며 등장 인물들과 함께 단서를 맞춰가며 쓰보이의 악행을 입증해나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아래 부터는 스포가 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장. 독경

첫 장 독경에서는 등장 인물들에 포함되지 않은 ‘상조회사 직원’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쓰보이의 장례식 풍경을 설명하면서 시작합니다. 여러 장례식장을 봐왔지만 이렇게 홀이 꽉 찰 정도의 많은 조문객들과 겉치례로 참석한 게 아닌듯 한 울음소리로 가득찬 장례식은 처음이라고 하며 쓰보이가 생전에 얼마나 존경받는 교육자였는지 알려줍니다. 그리고 등장 인물들이 쓰보이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쓰보이와 그들간의 관계에 대해 알려줍니다. 이 등장 인물들 중 가장 이질적인 존재는 데라시마 유 입니다. 그는 쓰보이의 제자도 아니며 쓰보이가 부지의 연립 주택 ‘메종 몽블랑’의 세입자일 뿐입니다. 개그 소재 중 장례식의 꽁트가 있는데 경험이 없어서 이야기가 빈약하다는 조언에 집주인의 장례식에 참석한 것 뿐입니다.

이번 장에서 알게된 쓰보이란 인물은 제자뿐 아니라 동료 교사, 이웃 주민 모두에게 존경을 받는 신이라 불릴만한 훌륭한 교사이자 인물인것 같습니다.

 

2장. 분향

조문객들이 분향을 하기위해 기다리면서 다시 한번 쓰보이와의 기억을 회상하는데 이번 장에서는 특이한 에피소드들을 떠올립니다. 사이키는 중학교 동창이 학교에서 자살한 사건을, 네기시는 외동 아들에게 가정폭력을 당하고 쓰보이에게 상담했던 기억, 고무라는 치매를 앓던 남편을 사고로 잃은 사건, 아유카와는 헤어진 전 남친에게 스토킹을 당한 사건, 테라시마는 콩트 연습을 하다 아유카와에게 항의 쪽지를 받은 기억이라던가, 쓰보이에게 컴퓨터 사용법을 알려주는 사건.

각 각 쓰보이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도 하고 아니기도한 과거의 사건들이 분향을 기다리는 등장 인물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독자로서는 으응?하는 지점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거 뭔가 연결되는 것 같은데? 하고 말이죠.

 

3장. 법화·상주인사

쓰보이의 딸 하루미와 도모미의 사정에 대해서도 자세히 나오는데, 하루미는 아버지를 따라 훌륭한 교사가 되려고 노력했지만 교권이 추락한 교실에서 반항기 가득한 학생과 학무모와의 트러블로 인해 현재는 퇴직하고 히키코모리처럼 생활하고 있습니다. 도모미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교사가 되려고 대학까지 졸업했으나 꿈을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부모와 다툰 후 집을 나가 극단에서 무명 배우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두 자매의 에피소드로 봐서도 쓰보이는 자애로운 아버지로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다른 등장 인물들도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또다른 잊혀진 기억들까지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사이키는 딸 미유와 지바현 해수욕장에 놀러갔다가 쓰보이를 우연히 만나서 인사했던 일, 네기시는 학교 후배 추천으로 어느 초등학교 교장으로 부임을 하게 되었으나 학교 행사 중 해안가에서 학생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책임을 물어 해고되었던 일, 고무라는 남편의 사고사가 사고가 아니라 HIKAWADAI J.H.S 이라는 교표를 가진 학생이나 교사의 살인사건일 수도 있다는 언질을 받은 일, 아유카와는 집을 나와 돈도 없을 때 집주인인 쓰보이에게 집세를 면제 받고 그에 보답하고자 그와 잠자리를 가졌던 일, 데라시마는 집주인을 우연히 하라주쿠의 전자기기/성인용품 매장 앞에서 마주쳤던 일.

교육의 신의 숨겨진 얼굴이 있을 것만 같은 진행이 이어지면서 훌륭한 교육자이자 인격자인 쓰보이의 다른 얼굴을 알아낸 것 같아 첫 장에서부터 의심이 갔던 여러 단서들을 맞춰가며 읽는 내내 결말에 대해 예상해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각 등장 인물들의 에피소드들을 복합적으로 유추해보며 그 사건들에 쓰보이가 강력하게 관여되어 있었다면?하고요.

 

4장. 경야 후 음복

음복이란 우리나라로 치면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먹는 것처럼 장례후에 음식을 먹는 것을 말하는데 조문객을 대상으로 음식을 대접하는 우리나라 문화와 달리 일본은 가족과 가까운 친족들만 참여하는 것 같습니다. 원래는 가족만 참여해야 하지만 상주인 하루미는 쓰보이의 장례에 참석해준 많은 조문객들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모두 음복에 참여해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다 각자 따로 있었던 등장 인물들 중 몇몇이 같은 테이블에 앉게되는데, 우연히 데라지마가 혼자말을 하다가 그말의 의미를 이해한 아유카와가 데라지마에게 말을 걸고 그러다 사이키, 네기시, 고무라가 이야기에 참전합니다. 처음 데라지마와 아유카와가 쓰보이의 악행일지도 모를일에 대해서 의견을 내고 처음에는 그럴리가 없다는 입장의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듣고는 자신이 알고 있던 이야기와 맞춰가며 퍼즐 맞추듯이 쓰보이의 다른 모습인 악인의 모습을 추론해냅니다.

드디어 그동안 따로 따로 나왔던 이야기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면서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며 쓰보이의 실체가 드러나는 듯합니다. 그는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그동안 그의 주변인들에게 일어난 의문스런 사고와 사망 사건들이 진짜 그의 소행이라면 마지막 자리에서라도 유족과 경찰에 알려야하지 않을까요? 사람들 앞에서는 선량하고 훌륭한 인격자이자 교사로서 행동해온 쓰보이가 사실은 살인도 서슴지 않는 잔인하고 악독한 사이코패스라니. 마지막 장을 앞두고 신의 숨겨진 얼굴을 공개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습니다.

 

5장. 대기실

이번 장은 대반전의 장입니다. 그동안 쌓아왔던 단서와 복선들이 4장 경야후 음복에서 하나의 큰 이야기로 연결되며 클라이막스를 찍었다면 이번장에서는 그 단단한 연결고리 같았던 단서들을 해체시키면서 다시 원점으로 교육의 신이자 인격자 쓰보이에게 신의 숨겨진 얼굴 같은 것은 없었다고 반전시킵니다.

장례식장 한켠에 숨어서 쓰보이가 얼마나 악인인지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던 그들을 유족인 하루미와 도모미가 발견하게됩니다. 아버지 장례식장에 온 조문객들이 한군데에 모여 고인의 흉을 보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면 얼마나 뒷목 잡을 일인지. 나라면 뭐하는 짓들이냐며 눈을 부라렸을텐데 하루미는 우선은 가족 대기실로 가서 이야기를 듣겠다고 모두를 모아 대기실로 갑니다.

대기실에 모인 그들은 하루미 자매에게 그들이 유추해낸 내용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각 에피소드들을 메모지에 적어서 시간 순으로 나열합니다. 하루미 자매는 처음에는 그들의 이야기에 그럴리 없다고 응수하지만 이내 수긍하고 피해자들을 향해 사과하며 경찰에 신고할 것을 약속합니다. 그러다 가장 쓰보이와 연관성이 없는 데라지마가 메모지들에서 위화감을 느끼고 모순점을 찾아내는데, 쓰보이가 사고사로 위장했을 거라고 추측했던 사건의 장소가 같은 이름을 가진 전혀 다른 장소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의 사건이 같은 지명 때문에 일어난 오해였다는 결론에 이르자, 다른 사건에 대해서도 혹시 사실 확인이 잘못된 건 아닌지 메모지마다 서로의 기억을 다시 총동원해서 추리해 나가다가 결국은 모두 오해로 밝혀지면서 쓰보이 악인설은 하나의 해프닝으로서 끝나게 됩니다.

쓰보이 악인설에 대해 이야기를 맞춰가다가 숨겨왔던 개인적인 말못할 이야기들도 하게 되었지만 어차피 그들은 쓰보이라는 연결고리가 없다면 다시 만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비밀을 털어놓게 되어 마음이 편해졌다며 쓰보이는 마지막까지도 교육자로서 우리를 계몽해주고 떠나는 신같은 존재가 틀림없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며 각자의 길로 떠납니다.

하지만 반전은 한번 더 있었습니다. 모두가 떠나고 대기실에 남은 하루미는 쓰보이의 소행이 아니라고 해명될때마다 뒤집어놨던 메모지를 다시 뒤집으며 하나 하나 기억을 되짚어 나갑니다. 그렇습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이 쓰보이의 악행으로 추리했던 일들이 사실은 그 딸인 하루미가 벌인 것이었습니다. 교육에 헌신하고 자상한 아버지였지만 정작 자신의 딸에게는 신경을 쓰지 못하고 하루미는 인격장애를 겪으며 존재하지도 않은 도모미라는 동생을 상상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수세에 몰릴때마다 도모미가 나타나 방해가 되는 사람을 죽였던 겁니다. 그래서 사건들을 유추할때 쓰보이가 관여한 것처럼 보였던 것은 같은 집에 사는 딸이 범인이기 때문으로 밝혀집니다. 하지만 누구도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고 하루미는 유리창에 비친 도모미와 대화를 하면서 끝이 납니다.

1장에서부터 쓰보이가 악인일지도 모를 단서와 복선들이 숨겨져 있었는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 단서와 복선들이 짜임새 좋게 연결되면서 마지막 장을 앞두고는 모든 단서가 들어맞는 하나의 스토리로 완성되더니, 마지막에는 모든 단서를 깨뜨려서 사실은 연결점이 하나도 없었던 우연한 사건들로 해체시키는 구조가 천재적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거기다 찐막으로는 사실 깨졌다고 생각한 연결점들이 중간에 하루미의 농간으로 인한 오인으로, 우연한 사고 1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연결되어 있는 것이 맞았고 거기다 쓰보이 부부를 자연사로 위장한 죽음으로 몰고 간 것도 모두 하루미의 범행이었다는 결말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재밌고 탄탄한 전개를 가진 소설이니 요코미조 세이지 미스터리에서 대상을 받았겠지요?^^

오랜만에 흥미진진한 재밌는 소설을 읽은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그래서 후지사키 쇼의 또다른 소설인 <살의의 대담> 도 읽어봐야겠습니다.

* <살의의 대담> 블로그글도 읽어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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