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사람들>은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 모음집으로 7편의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1998년에 발표한 단편 모음집으로 주변에 있을 법한 평범한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이야기들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탁월한 스토리텔링 감각이 느껴집니다. 짧은 분량의 단편들인데도 몰입이 잘되고 이야기가 흘러나가는 방향도 쉽게 예상할 수 없어서 너무 재미있게 봤습니다. 스포의 내용이 포함되고 개인적인 사견이 많습니다.
수상한 사람들
자고있던 여자
친구들에게 자기 집을 러브호텔용으로 대여해주던 남자는 어느날 친구가 두고간 여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술에 취해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고 하는 그녀를 위해 자신의 친구들 중에 누가 그녀를 데려왔는지 추리를 하게 되는데, 그러다가 엉뚱하게도 회사 거래처 물품을 빼돌리는 현장을 적발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 이야기의 처음부터 단순한 주인공의 배경 묘사처럼 나온 것들이 나중에는 결말의 복선이 되는 흐름을 보고서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판정 콜을 다신 한번!
고시엔 진출을 앞 둔 경기에서 실책을 하고 밑바닦 인생을 사는 주인공이 강도짓을 하려다 도망치다가 ‘그’ 경기의 심판의 집으로 숨어들어가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 출루를 하면서 ‘세이프’인줄 알았는데 ‘아웃’ 판정을 받은 후 중요한 경기의 실책을 한 죄인 취급을 받아 학교도 그만두고 밑바닦 생활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던 주인공이 친구가 제의한 강도 사건에 응하게 되는데, 강도 짓을 할 동네가 ‘그’ 경기의 심판이 사는 동네라는 걸 알고 도망치다가 심판의 집으로 숨어들어가면서 서로 그건 세이프였어, 아냐 아웃이었어 하고 말싸움을 벌이다 결국 주인공이 집을 뛰쳐나가 경찰에 잡히고 맙니다. 고등학교까지 자퇴하면서 미워하고 이름과 사는 동네를 알아놓을 정도로 증오하는 심판이었는데 그냥 말싸움만 하다가 도망치다니. 주인공도 강도 짓을 하려했지만 아주 나쁜 놈까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고작 20살이니까요. 아마 친구가 강도를 제의한 동네가 심판이 사는 동네가 아니었다면 강도 행각에도 참여하지 않았을것 같기도 했습니다. 결국은 구치소로 찾아온 심판이 세이프를 외치련느 순간 니 손가락이 베이스에서 떨어져서 아웃이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해줍니다. 찰나의 순간에 세이프에서 아웃으로 바뀐 순간이 심판으로서도 너무 안타까워 세세히 기억하고 있었던 겁니다. 아직 20살 밖에 되지 않은 주인공의 인생이 앞으로는 세이프가 되기를 바라며.
죽으면 일도 못 해
대졸 신입사원으로 실습차 제조 공장에서 현장직으로 일하고 있던 주인공이 출근한 어느 월요일. 휴게실에서 성실함의 아이콘으로 유명한 본사 계장님의 시체를 발견하게 됩니다. 너무 성실하고 열심히 일한 덕에 거래처 직원에게 수많은 요구를 하게 되고 스트레스를 받은 직원에게 살해당한 것이었습니다.
: 이야기를 읽으면서 제조업의 공장 직원보다 본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직원의 업무 강도가 더 심하고 결국에는 거래처 직원에게 살해당한다는 엔딩으로, 실습 기간이 지나 본사로 돌아가는 주인공에게 공장 직원들이 몸조심하라며 ‘죽으면 일도 못 해’라고 말하는 모습이.. 한국의 정서와는 너무 달라서 이해하기기가 어려웠습니다. 이 단편집이 90년대 후반에 나온 책이라 그 당시 일본에서 그런 상황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으나 사뭇 이해할 수 없어서 몰입이 잘 안됐던 이야기기도 했습니다. 중간에 새로 연구 개발한 로봇 기계 팔이 나오면서 기계에 의한 살인으로 오인되기도 하지만 결국은 사람이었네요.
달콤해야 하는데
하와이로 신혼 여행을 떠나는 커플. 달콤해야 할 그 곳에서 남편은 부인을 살해하려고 합니다.
: 재혼으로 어린 딸을 데리고 결혼을 하려고 했던 남편은 결혼 전 딸이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게 되는데 그 범인으로 부인을 의심하게 되면서 신혼여행지에서 그녀를 죽일 계획을 세웁니다. 결혼 전부터 자기 딸의 사고사가 사고가 아니라 예비 신부의 살인이라고 생각한 남자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 그녀에게 복수할 생각으로 하와이행 신혼 여행을 오게 되는데, 이것부터가 너~무 이해가 되지않고 아무리 소설이지만, 왜 사적복수부터 꿈꾸는지 이상한 남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부인을 목졸라 살해하려다가 포기하고 부인을 놓아주는데, 알고보니 딸의 사인도 남자의 실수로 인한 사고사였던 것이 밝혀집니다. 옆 방 노부부의 방에 피해있던 부인을 찾아가 사과하면서 이야기가 마무리 되는데 뭔가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남자를 뭘 믿고 받아주는 건지.. 전문가도 아닌 자신의 개인적 판단으로, 정황상 단서만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자 부인이 될 여자를 살해하려고 결심한 남자인데. 자식을 잃고 이성이 흐려져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을 법하나 이야기의 마무리가 훈훈한 엔딩처럼 느껴져서 개인적으로는 위화감이 느껴졌습니다.
등대에서
어릴때부터 지속된 상하관계의 친구 둘. 대학에 입학해서도 지속되는데 그 관계를 끊고 싶은 주인공은 홀로서기를 하기위해 여행을 떠나고 그 관계를 지속하고 싶은 친구도 같이 또 따로 하는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여행지에서 나쁜 일을 당할 뻔한 주인공은 친구에게 일종의 복수심으로 그 여행지를 추천해주는데 그곳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여행을 끝내고 친구와 만난 주인공은 살인사건 신문 기사를 친구에게 보여주고 사진첩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어하는 새싹같은 풋풋한 스무살 청년의 홀로서기 내용인 줄 알았는데 등골이 서늘한 결말이 준비되어 있던 이야기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자신을 꼬붕(?) 취급하는 친구에게 벗어나고픈 마음과 골탕 먹이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능하지만, 친구를 범죄의 피해자로 만들고 또 그 친구가 살인사건의 범인임을 확신하면서 신문기사를 스크랩까지 해놓고 10년에 한번 들여다보는 주인공 마음의 어둠은 헤아리기 힘들것 같습니다.
결혼보고
대학친구 노리코에게서 온 결혼보고 편지에 동봉된 모르는 여자 사진 한장으로 의문을 풀기 위해 지방까지 내려가서 탐문을 하다가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입니다.
: 이 글은 읽으면서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도대체 그 여자는 누구지? 그리고 친구는 어디로 사라진거지? 하는 의문의 가득한 채로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말이 너무 궁금해서 그냥 뒷부분부터 읽을까 하고 고민을 많이 하면서 읽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연이 겹치고 겹쳐서 사건이 진행되는데 어거지 같지 않고 너무 적절하게 사용되니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든 것 같습니다. 이 한 편 때문이라도 <수상한 사람들>을 읽을 만한 이유가 되는 단편이었습니다.
코스타리카의 비는 차갑다
캐나다 지사 발령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부부는 조류 사진을 찍는 취미가 있는 남편의 바램으로 코스타리카 여행을 떠납니다. 안전하다고 생각한 코스타리카에서 강도를 만나서 카메라도 뺏기고 빈털털이로 구사일생 숙소로 돌아오는데 우연히 발견한 카메라 전지뚜껑을 단서로 강도단을 잡고 무사히 캐나다로 돌아가게 됩니다.
: 이 이야기는 작가 지인이 실제로 겪었던 에피소드라고 합니다. 카메라 전지 뚜껑을 단서로 강도단을 잡는 추리의 내용도 재미있었지만, 캐나다 생활 내내 외국인과의 이질감을 느끼던 일본인 부부가 힘든 사건을 겪고나서 일본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애정을 전하는 외국인 친구들을 이해하게 되면서 감동을 받게되는 내용이 흥미로웠습니다. 일본인 부부가 캐나다에서 캐나다인 직원과 소통하고 중국인 이웃과 갈등도 빚으면서 힘들어 했지만 일본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들을 위해서 빠른 일처리를 해주고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부부를 위해서 ‘웰컴 홈’ 인사를 전하는 이웃을 보고 마음의 위안을 받는 엔딩이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니.. 실제로 그 일을 겪은 지인들은 얼마나 무서웠을지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는 사람이 아니라 공장과도 같아서 신작도 엄청 자주 나오고, 이상하게 읽다보면 전에 읽은 것 같은 기시감이 드는 적도 많아서 한동안 이 작가의 책이라면 읽지 않았었는데 오랫만에 보니 역시 ‘구관이 명관이다’ 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됐습니다. 앉아서 첫 문장을 쓰면 저절로 다음 문장이 써지고, 다 쓰고 나면 생각지도 못했던 결말의 복선이 이미 앞의 이야기에 만들어져 있었다고 하는, 앉기만 하면 한 편이 그냥 써진다고 하는 분. 히가시노 게이고는 역시 천재 이야기꾼 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