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의의 대담] 6개의 대담 속 섬뜩한 속내들

<살의의 대담>은 <신의 숨겨진 얼굴>로 제 34회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한 후지사키 쇼 작가가 잡지 대담 형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새로운 유형의 소설입니다. <신의 숨겨진 얼굴>을 대단히 흥미롭게 읽었기에 <살의의 대담>에 큰 기대를 하고 읽게 되었습니다.

<살의의 대담>은 <신의 숨겨진 얼굴>보다는 좀 더 경쾌한 느낌이었습니다. 잡지 대담 형식으로 등장 인물들이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들의 속내를 알 수 있었는데요, 속마음을 나타내는 내용은 글자색을 다르게 해서 표현했습니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살갑게 인사를 하고 상대를 치켜세우지만 속으로는 상대를 얕보고 인터뷰 내용과 이어지는 다른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살의의 대담

전체적인 이야기의 큰 줄기는 영화 ‘마녀의 도망’의 원작자 야마나카 레이코와 배우 이데 나쓰키를 둘러싼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뤄지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대담 에피소드는 «SPORTY» 황금연휴 특대호 편에 나오는 두 명의 축구선수의 인터뷰 내용이었습니다. 월드컵에 출전할 마지막 하나 남은 공격수 자리를 놓고 같은 팀에서 뛰고 있는 두 선수가 서로의 속내를 숨긴채 인터뷰를 하면서 다른 선수의 올림픽 출전을 저지하기 위해 얼마나 공들여 연막 작전을 꾸몄는지 이야기 하는데 그 공방전이 너무 흥미진진하면서도 코믹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소설에서는 등장 인물 중에 살인자가 너무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작가가 이야기의 톤을 조금 가볍게 만들지 않았나 추측해 봅니다. 이 소설이 현실감이 있다고 하면 우리들 주변 인물의 반이 살인자인 세상, 혹은 나 자신이 살인자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하하^^

아래부터는 스포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월간 엔터테인먼트 붐» 9월호

개봉 예정작인 ‘마녀의 도망’이라는 영화 홍보를 위해 원작 소설 저자인 야마나카 레이코와 주연 배우 이데 나쓰키의 잡지 대담입니다. 홍보하러 나온 영화의 내용은 폭력적인 남자친구를 살해하고 달아나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야마나카와 이데는 첫만남부터 서로를 탐탁치 않게 여기지만 웃는 얼굴로 덕담을 나눠가며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원작자인 야마나카나 배우인 이데 또한 어떤 사정으로 인해 살인을 한 경험을 감추고 인터뷰 내내 웃는 얼굴로 ‘너는 모르겠지만 사실 난 사람을 죽인 경험이 있다구~’ 이런 속내를 드러내는 것 같았습니다. 대담중의 질문들 속에서 그들은 대답을 하는 동시에 속마음으로 과거를 회상하는데요, 두 사람이 살인을 저지른 일이나 알려지지 않은 과거 등이었습니다. 그리고 독자만 알 수 있는 두 사람의 엄청난 악연도 알 수 있어 앞으로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 지 너무 궁금해졌습니다.

 

«SPORTY» 황금연휴 특대호

J리그 펠라자 후바나시에서 활약하고 있는 22세의 우에다 료헤이와 34세의 미즈사와 유스케가 마지막 한 자리만 남은 월드컵 공격수 자리를 놓고 누가 선발이 될 지 관심을 받고 있는 가운데 진행된 잡지 대담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번 에피소드는 코믹하기도 하면서 재밌었습니다. 젊고 능력있는 우에다와 그를 견제하는 나이 많은 선배 미즈사와가 서로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월드컵 출전 기회를 자신이 얻기위해 여러가지 연막 작전을 세웠던 일들을 대담 중에 회고하는데 유치한 것도 있고 위험 천만한 일도 있었거든요.

언제나 에이스 선수였던 우에다는 학생 시절이나 선수시절에 항상 견제를 당해왔기 때문에 미즈사와가 했던 장치(?)들이 너무나 간파하기 쉬운 것들이었기 때문에 부상을 당하거나 하는 일이 없었는데 미즈사와는 우에다가 항상 운이 좋아서 부상당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합니다. 우에다는 미즈사와에게 미인 여자친구가 생기게 만들어서 월드컵 출전을 할 수 없는 약물을 복용하게 했는데 미즈사와는 끝까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러 저러한 견제 끝에 안타깝게도 두 선수 모두 결국은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했는데요, 귀여운 덤앤더머 같은 두 사람에게 다행인 점은 두 사람은 살인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나오는 등장인물들이 아무렇지 않게 살인을 하는 <살의의 대담> 에서 드물게 살인자가 아닌 등장인물이었습니다.

 

«월간 히트 메이커» 10월호

월드컵 테마송을 불러 오리콘 1위도 달성한 혼성 밴드 SML의 보컬 SHIORI, 베이스 MAKOTO, 기타 LICK의 대담입니다. 밴드 이름이 옷 사이즈 같은 SML이라니 이상하다 했는데 멤버들 이름의 이니셜이었습니다. 이번 편에서는 마성의 여자라고 할까, 주변의 모든 남자와 비밀 연애를 하고 있는 이상한 여자가 나옵니다. 남자 친구들한테 그들이 원하는 선물도 잘 해주는 너무 다정한 여자인데요, 웃기게도 이 남자에게 받아서 저 남자에게 주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심지어 그 중에는 남편도 있어서 도대체 이 여자의 주변인의 어디까지가 비밀 애인인걸까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허허.

뛰어난 작곡 실력과 노래 실력이 있었지만,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누군가 자기를 떠나는 걸 두려워해서 자기를 좋아하는 남자와는 모두 사귀어 버리는 시오리.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죽고 싶다고 생각해 콘서트 중 투신자살 계획을 한 그녀. 하지만 누군가 자기를 멈춰주기를 바랬던 건지 신곡 가사에 역 세로드립으로 메세지를 넣었는데 대담 마지막에 그 가사가 실려 있습니다. 근데 저는 아무리 그 가사를 뒤에서 부터 읽어도 어떤 메세지인지 알 수 없어서 엄청 답답했는데요, 이런 걸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소설을 읽으시면서 문제 풀이도 하는 기분으로 즐기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이 «주간 특종 저널» 대담편에서 해답을 알 수 있습니다.)

 

«텔레비전 마니아» 9월 10일 ~ 9월 23월호

종방을 앞 둔 드라마 ‘사위는 10대째’의 주연배우 오타케 도시야, 에모토 미나, 도몬 도루의 대담입니다. 오타케는 엄청 잘나가는 미남 배우로 사위 역이고, 에모토는 떠오르는 신예 여배우로 오타케의 부인역, 도몬은 험악한 인상으로 악역을 주로 맏았던 조연전문 배우로 에모토의 아빠 역입니다.

이번 대담에서는 오타케와 에모토가 비밀연애를 하고 있는 연인인데요, 도몬이 대담중에도 이를 탐탁치 않게 여기는 티를 내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설마, 딸뻘 여배우를 좋아하는건 아니겠지 하구요. 다행이도 그런 막장은 아니었고 알고보니 에모토는 도몬이 무명배우 시절의 연인이 그와 헤어진 후에 낳은 그의 친딸이었고 에모토는 그 사실을 모르며 도몬도 최근에 사람을 써서 알아내고는 몰래 딸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타케가 신예 여배우 킬러로 행실이 아주 나쁜 놈이어서 그와 비밀연애를 하고 있는 에모토를 걱정하던 중인데 그런 도몬의 마음을 알리 없는 에모토는 잘생긴 오타케의 외모만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에모토였습니다. 태생적으로 살인자였던 건지 주변인을 궁지에 몰아넣거나 해서 죽어간 사람이 한 둘이 아닌 연쇄살인마입니다. 특히 예쁜 얼굴을 한 사람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걸 즐깁니다. <살의의 대담>에 나온 살인자 중에 가장 극악한 프로페셔널 살인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까지 읽었을때는, 처음에 나온 야마나카와 이데가 언제 다시 나오는지 아예 다시는 등장하지 않는 건지 의아해지고 등장인물이 너무 많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살의의 대담>에서는 등장인물도 많고 그들이 살인 경험자인 경우도 많은데 흥미로운건 그들이 살인을 들키지도 않았으며 멀쩡한 직업이 있고 특히 연예계에 종사한다는 점입니다. 막판에는 살인자들끼리 공터에서 배틀이라도 벌이는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각 대담의 등장인물끼리 연관성이 있기는 하지만 같은 등장인물이 다른 잡지 대담에 나오는 방식으로 등장인물 수를 줄였으면 좋았을 것같다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주간 특종 저널» 11월 23일호 게재 예정 원고

이번 대담은 게재되지 못한 원고분입니다. 그동안 위의 모든 대담을 진행했던 진행자는 다니가와 마이코로 그녀가 진행한 대담의 주인공들에게 안좋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사카가미 마사시가 그녀를 대상으로 대담을 진행합니다. 사카가미는 다니가와가 그녀가 진행한 대담에 출연한 사람들에게 일어난 불행에 어떤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어 여러가지 질문을 퍼부어 대지만 다니가와는 모든 질문에 차분하게 대답을 이어나갈 뿐입니다. 결국 아무 소득이 없었던 이 대담은 잡지에 실리지 못합니다. 독자로서는 다니가와의 곁에 있는 마스크를 쓴 수상한 조수를 눈여겨 볼 뿐입니다. 저는 그녀가 에모토가 아닌가 추측했었습니다.

 

«클릭 브로드캐스트» 4월 18일 미디어믹스 스페셜 대담

인터뷰어 다니가와 마이코가 진행한 작가 야마나카 레이코와 만화가 히비키 다쓰오의 대담으로 진행됩니다. 다니가와로 성형한 이데가 베프였던 에모토의 복수로 야마나카를 죽이기 위해 야마나카가 고용했던 탐정을 역으로 회유해서 만화가 히비키인척 참여하게 한 가짜 인터뷰입니다. 여기에는 에모토의 친부인 도몬도 변장해서 딸의 복수를 준비하는 이데를 도와 야마나카를 죽일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야마나카를 가짜 인터뷰로 유인해서 아무도 없는 빈 건물에서 죽일 계획인 다니가와로 성형한 이데와, 상대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자기가 노려지는 걸 눈치채고 탐정(히비키)을 재 회유해서 상대를 없애려는 야마나카. 이데와 야마나카 사이에서 여기에 붙었다 저기에 붙었다 하는 히비키까지. 어질어질 합니다.

야마나카와 전남편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이데가 살해한 전남친이었고, 탐정을 이용해 이데가 아들을 살해한 범인임을 알고 이데를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가, 그 가운데 <살의의 대담> 등장인물 중 살인자 끝판왕격인 에모토가 이데의 베프로 위장해 이데를 살해하려는 계획이 더해지면서 오히려 이데 대신 에모토가 방화로 죽게되는데, 에모토가 이데를 죽이기위해 자신의 흔적을 지운 점이 엉키면서 사망자가 에모토가 아니라 이데인 채로 세상에 알려지고, 화상을 입은 이데는 자신을 향한 살인 계획이 있음을 눈치채고 생존을 숨긴채 복수를 위해 다니가와를 찾아가 다니가와로 성형을 하고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겁니다.

어질어질하기 짝이 없습니다. 결국은 도몬이 준비한 폭약이 폭발하면서 그 자리에 있던 관계자 모두가 사망하면서 얽히고 설킨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클릭 브로드캐스트»편은 일본 만담 개그 같은 느낌도 받았습니다. 서로 니가 이런걸 할 줄 알고 나는 이걸 준비했지, 그래서 니가 그럴줄 알고 나는 요런걸 준비했지, 그럴줄 알고 나는.. 이런 식으로 계속 이어지는 만담 느낌.

 

에필로그 «실화진상» 6월 20일호

에필로그는 다니가와와 인터뷰를 진행했던 사카가미의 독백?입니다. 등장인물 모두가 사망한 폭발 사건 이후 사카가미는 역시 자신의 감이 틀리지 않았다며, 다니가와에게는 이상한 힘이 있어서 그녀와 얽힌 모두가 안좋은 일을 당한거라면서 자신 역시도 나쁜일이 생길거라고 걱정합니다. 액운을 없애기 위해 스님이나 영능력자를 찾아가 액땜을 부탁하지만, 모두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붙어있지 않아’라고 괜찮다고 하지만 사카가미는 믿지 않습니다. 다니가와의 저주를 받아 자신에게 나쁜일이 일어날거라고 두려워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살의의 대담>보다는 <신의 숨겨진 얼굴>이 더 몰입해서 읽기 쉽고 재밌었던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등장인물이 더 적고 그들이 쓰보이라는 인물 한명과 얽힌 것이기에 쓰보이 중심으로 각 인물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읽으면 됐기에 <살의의 대담>보다는 집중이 잘 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등장인물이 여럿 나오고 그들의 이야기가 크게 혹은 적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류의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살의의 대담>이 더 재밌게 느껴지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신의 숨겨진 얼굴> 블로그도 한 번 읽어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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