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 작가의 단편 모음집인 <까마귀>를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좋아하는 단편 위주로 감상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예전에 대학생 시절에 이태준 작가의 수필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얼마 전에 도서관에 들렀다가 단편 모음집이 있길래 얼른 빌려왔습니다. 역시나 글이 술술 읽히면서도 이야기들이 재밌고 매력적이라 좋았습니다. 이번 단편선에 나온 여러 단편 중 특히 마음에 드는 <달밤>도 소개 하고자 글을 적어 봅니다.
이태준 단편선 <까마귀>
문학과지성사에서 ‘한국문학 전집’으로 발행된 이태준 단편선 <까마귀>에는 <불우선생>, <달밤>, <까마귀>, <장마>, <복덕방>, <패강랭>, <농군>, <밤길>, <토끼 이야기>, <해방 전후> 이렇게 10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단편은 단연코 <달밤>입니다. 물론 <달밤> 외 다른 단편들도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이태준 단편선을 읽고나서 뒤에 나오는 작가 연보나 작품해설을 연관지어서 보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작가의 연대기가 우리나라 역사의 큰 줄기들과 맞대어져 있어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달밤>
<달밤>은 이태준 단편선에서 제가 너무 재미있게 읽고 좋아하는 이야기 입니다. 첫 장을 읽는 중에 킥킥하고 웃음이 새어나올 정도였는데요. 이야기 시작 부분인데도 주인공의 성격을 명확하게 표현주는 것 같습니다. 아래에 그 초입 부분을 좀 소개해 보겠습니다.
성북동으로 이사 나와서 한 대엿새 되었을까, 그날 밤 나는 보던 신문을 머리맡에 밀어 던지고 누워 새삼스럽게, “여기도 정말 시골이로군!” 하였다.
무어 바깥이 컴컴한 걸 처음 보고 시냇물 소리와 쏴- 하는 솔바람 소리를 처음 들어서가 아니라 황수건이라는 사람을 이날 저녁에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말 몇 마디 사귀지 않아서 곧 못난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 못난이는 성북동의 산들보다 물들보다, 조그만 지름길 보다, 더 나에게 성북동이 시골이란 느낌을 풍겨주었다.
서울이라고 못난이가 없을 리야 없겠지만 대처에서는 못난이들이 거리에 나와 행세를 하지 못하고, 시골에선 아무리 못난이라도 마음 놓고 나와 다니는 때문인지, 못난이는 시골에만 있는 것처럼 흔히 시골에서 잘 눈에 뜨인다. 그리고 또 흔히 그는 태고 때 사람처럼 그 우둔하면서도 천진스런 눈을 가지고, 자기 동리에 처음 들어서는 손에게 가장 순박한 시골의 정취를 돋워주는 것이다.
위에 내용만 보고 주인공이 인정 머리 없는 매정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는 곧 황수건씨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된답니다.
주인공이 성북동을 시골이라고 느끼게 만든 황수건은 신문 배달원인데, 원래 신문 배달하는 사람이 신문을 돌릴 곳이 너무 많아서 몇 군데만 황수건이 배달 하도록 보조 배달원 식으로 고용한 사람입니다. 그는 신문을 돌리러 와서는 새로 이사 온 주인공에게 자신 얘기로 수다를 떨며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황수건을 불편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그와 대화하는 것을 즐기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날 황수건이 아닌 다른 사람이 배달을 오게 되어 물으니, 배달지에서 황수건에 대한 불만이 많이 제기되어 그가 해고되었다고 답합니다.
<달밤> 뿐 아니라 이번 단편선에 실린 단편들을 읽다보면 소설을 읽는 건지, 작가 본인의 일화를 소개하는 건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읽고 있는 사람도 소설 속의 주인공에게 이태준 작가를 자연스레 대입하면서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달밤>에 나오는 주인공은 황수건을 처음 보고는 못난이라고 생각하고 불쾌해 했으나 그와 대화를 하면서 그가 순박하고 천진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글을 읽다보면 저도 황수건의 천진함에 유쾌해지는 기분이 들어 황수건의 이야기를 계속 읽고 싶어 지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캐릭터가 매력적이면서도 이야기의 흐름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점이 이태준 작가 글의 특징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까마귀>
시골에 내려간 유명하지 않은 소설가가 묘령의 여인을 만나면서 진행 되는 이야기가 <까마귀>입니다. 우연히 만난 여인은 작가의 팬으로 폐병으로 인해 요양차 시골에 내려온 것입니다. 그녀는 작가가 머무는 별장 근처에서 날아다니는 까마귀를 보며 자기를 잡으러 오는 죽음 갔다고 무서워 합니다. 작가는 시한부 인생의 그녀에 대한 연민으로 까마귀를 잡아 그녀에게 한낱 새 일뿐이라고 그녀를 안심시키려 하지만 그 사이 그녀는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작가는 폐병을 앓는 여인을 가여워 하면서도 폐병 환자이기 때문에 그녀가 연인도 없고 사랑도 받지 못하는 마냥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그녀를 향한 연민과 애정으로 그녀의 연인이 되어 주겠다 다짐하죠. 하지만 그녀는 그녀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젊고 전도 유망한 연인이 있었죠.
요즘의 시각으로, 저의 주관적인 감상으로는 글에 나오는 작가가 아주 한심하기 짝이 없어 보였습니다. 폐병에 걸려 죽을 날을 기다리는 여인이 아주 안되기는 했으나, 마치 자신이 그녀의 구세주라도 될 수 있는 듯이 생각하는 점이 그랬습니다. 정작 자신은 잘 팔리지도 않는 책을 쓰는 작가로 자신의 앞날도 알 수 없는 처지이면서, 폐병에 걸렸다고 덮어놓고 사랑도 못 받아본 불쌍한 여인 취급을 하다니.. 이번 편에서는 글을 다 읽고, 과연 작가인 주인공이 폐병으로 세상을 떠난 여인에 대해 글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치며
수록된 소설들의 배경은 일제 시대인지라 변해버린 세상 속에서 놀림을 받아도 옛 모습을 지키며 살고자 하는 사람도 있고, 원치 않아도 순응하면서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특히 <해방 전후>라는 소설에는 일본이 항복 선언한 후, 조선의 지방에서는 아직 소식이 전해지지 않아 카더라 식의 소문을 듣고는 사실 진위를 확인하러 주인공이 서울로 올라오는 내용이 있습니다. 서울로 가까워 질 수록 해방이 맞다는 말을 듣게 되지만 여전히 일본군과 앞잪이들이 평소처럼 길거리에 나다니고 있기 때문에 확신할 수 없었죠. 결국 상경을 하고선 해방을 확인 하게됩니다. 1945년 8월 16일부터 해방 직후에 있었을 법한 일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는데.. 조금 슬프고 씁슬하기도 했습니다.